속리산고속 지역색도 없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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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고속 지역색도 없어지려나
  • 김진오 기자
  • 승인 2008.04.02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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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제분 민철기 쭻 동양고속 쭻 경남버스 이어 금호고속 새주인
대표이사 고령·건강악화 공식 이유, ‘손익 따졌을 것’에 무게
충북지역 유일한 고속버스 업체 속리산고속이 업계 1위 금호고속에 매각, 1967년 회사 설립 이후 42년 만에 세 번째 주인을 맞게 됐다.
속리산고속 측은 회사 주식 전부를 보유하고 있는 경남버스가 금호고속과 법인양도양수를 전제로 지난달 26일부터 3일간 실사를 마쳤으며 조만간 정식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속리산고속은 206명의 직원과 92대의 차량을 보유, 서울 노선 등 전국 14개 노선을 운행하고 있다.

광주광역시에 본사를 둔 금호고속은 1946년 광주택시로 출발해 1968년 경부선 운행에 나서면서 고속버스 업체로 자리를 굳혔다. 이후 광주고속을 거쳐 현재의 금호고속으로 이름을 바꾸며 사세를 확장했다.

   
▲ 속리산고속 노조가 회사매각 방침에 법인과 주소지 유지에 대한 명확한 약속을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코오롱고속과 한진고속의 노선을 인수, 2400명의 직원과 1117대의 차량을 보유한 국내 고속버스업계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사업다각화를 추진,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몸집을 불렸으며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마저 계열사로 편입, 굵직굵직한 5~6개의 대기업을 거느린 재계서열 7위로 수직상승했다.

금호고속의 속리산고속 인수 금액은 알려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비슷한 규모의 코오롱고속 노선 인수금액이 28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해 갖가지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속리산고속 측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며 억측을 경계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코오롱고속은 당시 부도상태였고 대표이사도 구속된 상황이었다. 또한 법인을 양도양수하는 속리산고속과 달리 노선만 인수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실사를 통해 확인된 경영상황과 노선의 경제성을 면밀히 분석해 구체적인 인수금액이 결정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975년에 이미 향토색 잃어
속리산고속은 이름에서부터 충북지역 향토색깔이 물씬 풍긴다. 도내 대표적인 명산이자 관광지인 속리산을 회사이름과 브랜드로 활용해 오고 있는 것.
실제 속리산고속은 지역의 기업인이 설립한 향토기업이었다. 신흥제분의 경영주였던 민철기 씨(작고)가 1967년 속리산관광주식회사를 설립, 청주-대전-보은간 3각 노선에 20대 운송사업면허를 받아 운행을 시작한 것이다.

이듬해에는 속리산관광호텔도 완공해 운수와 호텔업을 병행한 관광기업의 틀을 갖췄으며 1970년, 고속도로 한정면허를 얻어 고속버스 업체로 발전했다.
하지만 향토기업으로서 속리산고속의 역사는 여기까지였다. 이듬해 11월 동양고속이 회사를 인수한 것이다.

동양고속은 이후 6년 동안 속리산고속을 경영했지만 그 실적은 신통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인수 당시 30대 였던 고속버스도 1981년 경남버스에 매각할 당시 36대로 불과 6대 증가하는 것에 그쳤고 신주와 사채발행을 통해 6억원 가까이 증자를 단행했다. 동양고속이 경영권을 행사한 6년은 성장이라기 보다 유지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경남버스가 속리산고속을 인수한 것은 1981년. 경남버스는 부산지역 제일의 시외버스업체였으며 고속버스사업 진출을 위해 법인양도양수 방식으로 속리산고속을 매입한 것. 이때까지만 해도 고속과 시외버스 운행을 병행했던 속리산고속은 새주인을 맞으며 보유하고 있던 시외버스 37대를 서울버스공사에 매각, 고속버스 회사로 전문화 됐다.

대신 30대 수준에 머물던 고속버스를 50대 이상으로 늘려 대전-강릉, 서울-보은, 청주-부산, 청주-대구 등으로 노선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기업 경남버스 계열사의 경영난으로 연쇄 부도를 맞으며 2004년 가까스로 화의를 졸업한 지 4년 만에 또다시 금호고속이라는 새주인을 맞게 됐다.

   
▲ 1993년 옛 서문동 고속터미널시절 속리산고속 직원들이 신차를 구입한 뒤 안전운행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고 있다. /사진=속리산고속 제공
속리산고속(당시 속리산관광)은 당시 잘 나가던 지역업체에 의해 향토기업으로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불과 8년 뒤부터 영호남 버스업체들이 번갈아 새 주인으로 들어서며 지역의 빛깔을 잃어갔다.

특히 경남버스가 시외버스업체였던 만큼 고속버스 법인인 속리산고속을 유지해 왔지만 전국구 고속버스 금호고속이 언제까지 ‘속리산’이라는 이름을 유지할지 미지수다. 금호와 속리산이 법인을 통합할 경우 지역을 상징하는 ‘속리산’이라는 브랜드도 한순간에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90년대 전성기 지나 부도 역경
속리산고속의 전성기는 1990년대 중반이었다. 50대 수준에서 머물던 보유 버스가 이 시기 100대에 이르렀고 직원도 200명 이상으로 전국 고속버스 업계 7~8위권을 유지하게 됐다.
1992년 우등고속 운행 개시와 노선을 확대하기 시작해 93년에는 우등만 21대를 포함 81대로 늘었고 서울 상봉 노선과 천안-영호남 노선이 개통되며 1996년 100대까지 증차된 것이다. 이 시기에는 별도의 자동차 정비공장과 직장 새마을금고를 유치할 정도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전성기의 꿀맛을 다 느끼기도 전에 IMF가 닥쳤고 모기업 계열사 부도로 인한 연쇄 부도로 97년 12월 화의에 들어가게 된다.
90년대 속리산고속 모기업인 경남버스는 부산지역에서 승승장구해 사업영역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또다른 운수업체 세원여객을 계열사로 두고 운수업을 확장하는 한편 울산 세원마트 및 롯데리아 가맹점을 개장하는 등 유통업에도 진출했다.

특히 부산 지역백화점인 세원백화점 등 6~7개 계열사를 거느리는 중견 업체로 성장했지만 IMF로 인한 세원백화점 부도가 속리산고속에도 직격탄이 됐다.
1997년 세원백화점이 현금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부도나자 속리산고속도 연쇄 부도를 맞았으며 가까스로 화의가 받아들여 졌던 것이다.

2004년 화의를 졸업하기 까지 피나는 자구노력이 진행됐다. 정비공장을 매각하고 일부 노선도 폐지했다. 옛 서문동 터미널 부지는 법원의 임의 경매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대전과 상봉영업소도 폐지했다. 노동조합도 급여를 동결하거나 상여금을 반납하는 등 회사 살리기에 동참했다.

궁금해지는 전격 매각 배경
속리산고속의 매각은 금호고속과 MOU가 체결될 때 까지만 해도 지역에 알려지지 않았다. 회사 소유주가 부산의 운수업체여서 경영정보가 취약하기도 하거니와 화의 졸업후 영업신장세가 상승곡선을 긋고 있었기 때문에 매각 가능성이 낮아보였던 것이다.

매각 배경과 관련한 회사 측의 공식입장은 대표이사의 나이와 건강문제다. 송봉명 회장이 일흔에 가까운 고령인데다 지난해 식도암 수술을 받아 6개월 이상 출근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기 때문에 경영활동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팔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것이란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우선 화의를 졸업 한 뒤 다소나마 영업실적이 상승하고 있고 건설교통부로부터 3년 연속 교통안전 우수업체로 선정되는 등 이미지도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실제 지난해 회의 졸업 후 처음으로 20억원의 영억이익을 실현해 이월결손금을 74억원대로 낮췄다.

계열사간 내부거래에 대한 규제 강화 등 변화하고 있는 경영환경도 소유주 경남버스가 매각을 선택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반면 아시아나항공에 이어 대우건설, 대한통운 등 대기업과 코오롱·한진고속 노선 인수 등 사업다각화와 몸집불리기에 탄력을 붙이고 있는 금호고속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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